변리사법 개정해 특허침해소송 문턱 낮춰야
(2024년
12월 17일자 매일경제 기고문)
김명신
아시아변리사회 명예회장
일본은 1997년에 유엔기후협약의 교토의정서에 가입한 국가로 자연환경 보호를
위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 하지만 매년 약 200억벌의
나무젓가락을 사용한다. 심지어 국내 삼림으로는 도저히 그 수요를 충당하지 못해 외국에서 목재 97%를 수입한다. 나무젓가락을 사용해선 안 된다는 이성은 나무젓가락을
사용하고 싶은 관습과 정서에 짓눌린다. 교토의정서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이는 약속에 따른 당위성이 편리함을 추구하려는 인간 욕망과 충돌하는 지점이다. 일본만이
아니라 어느 국가든 일본 경우에 처하면 예외이리라는 보장이 없다.
첨단기술 문제를 다루는 특허침해소송에서도 불합리한 관행과 정서의 작용은 여전하다. 변호사가
특허침해소송 대리인으로 선임된 사건에서 소송 당사자가 원하면 변리사를 추가로 소송 대리인으로 선임할 수 있는 내용의 변리사법 개정안이 대표적인
사례다.
변리사법 개정안은 2004년 이래 다섯 번 국회에 발의돼 세 번이나 소관
상임위원회(산자위)를 통과했다. 하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법체계와 자구 심사를 구실로 변변한 심의조차 하지 않고 회기 만료에 따라 폐기해
왔다.
지난 6월 여섯 번째 변리사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법조계는 변리사가 민사소송을 모른다고 주장하지만 변리사 자격시험에는 이미
1997년부터 민사소송법이 필수과목으로 채택됐다.
자격 취득 이후에도 해마다 민사소송실무 연수교육을 의무적으로 받고 있다. 게다가 1998년 3월부터는 특허법원에서 변리사가 심결취소소송 등 대다수
소송을 원만하게 대리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 번번이 문턱을 넘지 못하고 법안이 자동 폐기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연출된다. 이공계 출신인 변리사가 법률 지식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는데 기술한 대로 시험 과목에 엄연히 민법과 민사소송법이
포함돼 있다. 기술 분야에서는 기초 이론에 이어 체계적으로 다년간 공부해야 기술과 특허과 전문가가 될
수 있다.
현재 국내 특허침해소송은 변호사와 변리사가 함께 일하는 대형 로펌이 사실상 독점하는 구조다. 변리사가 소송 대리를 못하기에 대형 로펌이 변리사들을 고용해 특허침해소송 대리 시장을 많이 점유한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 열에 아홉은 소송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소송을 포기한다고 한다. 만약 변리사에게 추가로 소송 대리 자격을 부여하면 중소 로펌 변호사에게도 함께 일할 기회가 주어져 소송 비용은
저렴해질 것이다.
또 특허침해소송이 일어나면 일단 변호사를 선임한 다음 원할 때에만 변리사를 공동 대리인으로 내세운다. 의무사항이 아니다.
작년 6월 문 연 유럽통합법원은 변리사가 소송 대리인이 됨은 물론이고 기술
판사 자격까지 부여받는다. 또한 미국, 일본, 중국 등 세계 주요 국가들도 변리사에게 소송 대리인 자격을 부여한다.
이미 20여 년 전부터 변호사와 변리사의 공동소송대리 제도를 도입한 일본에서는
소송 기간이 평균 10개월이나 단축됐다.
지난 국군의날에 국산 무기인 현무5 등장은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운다.
이런 과학기술도 특허로 보호하고 소송 발생 시 이를 잘 변호해야 지속적으로 발전한다.
과학기술계와 산업계의 오랜 염원 그리고 국제 추세에 따라 국익을 고려해 변리사법이 개정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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